<역행자>라는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유전자 오작동(클루지)'라는 개념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 오작동은 우리의 뇌가 가진 인지적 편향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합리적인 판단을 막는 심리기제이다. 만약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싶었다면 감정에 치우친 사고를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이 논리적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내가 최근에 빠진 클루지는 무수히 많다. 일단 단기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하지 않았다. 연봉 몇 백 만원 더 받는 것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긴 하지만, 사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큰 이득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봉은 낮더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보장하는 회사에 다닌다든지, 장기적인 성장을 생각하고 회사를 고르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한 이득을 얻었을텐데'라고 생각하는 것도 클루지일지 모른다. 마치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이때 A 주식을 샀더라면 내가 얼마를 벌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손실을 봤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사지 않은 주식은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득도 없고 손실도 없고 부러워할 이유도 전혀 없지 않는가. 그 당시에는 해당 주식을 사지 않았던 이유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상황으로 돌아가면 '오르는 주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착각한다. 어떠한 사실을 알고 있는 체로 과거로 돌아간다? 이런 발상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나간 순간을 굉장히 아쉬워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선택을 하는 우주가 존재하는 '평행우주이론'은 창의성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선택지를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지 않은 길이 무조건적으로 좋았으리라 생각하고 현 상황을 안 좋게만 평가하는 것은 사실 클루지라고 느껴진다. 선택 이후에는 현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낫지,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다른 선택을 생각하는 것부터 넌센스다. (인간 자체가 원래 모순적이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지만..)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다음 경험 역시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클루지'일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과거에 만났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뉴타입의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 만나보기 전까지는 과거에 만난 사람과 비슷한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에 '이 사람도 그러겠지'라는 판단부터 내린다. 이는 클루지다.
<역행자>라는 책을 7번 이상 읽었음에도 여전히 '클루지'에 빠지고 있다. 내가 하는 판단이 실제로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선택할 수 없거나 선택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결과를 따지기보단, 현재 상황에 더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길 바란다.
인간의 부정편향 때문에 과거의 부정적인 일들이 그리 쉽게 잊히지는 않겠지만,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해서 새로운 경험까지 망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온갖 심리적 기제가 '클루지'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갖고 살아가다보면, 쓸데없이 기분이 나빠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현재'로서 의미를 갖는다. 지나간 과거를 현재와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글은 사실 개발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내가 여전히 과거의 경험에 얽매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를 해봤다. 솔직히 나는 과거의 경험들이 무조건 안 좋은 영향만 끼쳤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진상들도 많이 만나봐야 정상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과거에 했던 선택들은 그 시점을 기준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판단력과 정보를 가지고 과거의 기준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때는 그게 정답이고 지금은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까. (더 현명해졌다는 소리이다)
이런 인지적 편향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클루지에 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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